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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의 문을 여는 것이 그렇게 쉬운 거요? 그 새가 누려온 안락과 안전 대신 무자비한 자유를 주는 것이 과연 그 새를 위한 일이오?” -폴라리스 랩소디 1권

 

   키 드레이번이 작중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새장’은, 이영도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규범과 한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진리인가? ‘살인은 죄’라는 것이? 만일 그렇다면, 그게 어쨌다는 거지? 그 진리에는 아무 힘도 없어. 그것이 갑자기 나타나 내 팔을 잡지는 못해. 새장은 차라리 만질 수 있고 거기에 부딪힐 수도 있어. 부딪힐 수 있고 내 행동을 구속해. 그런 것이 괜찮은 진리 아닌가. 도대체 왜 그걸로 만족할 수가 없나. 하지만… 하지만?”


   -폴라리스 랩소디 5권


“왜 넌 암탉이 달걀을 낳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키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키의 말에서 ‘넌’이라는 대명사는 일반적인 용법과 다르게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며 세실은 하이낙스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림의 외곽 절벽 위에서 세상을 향해 으르릉거리고 있던 키를 생각했다. 쥬르노 산은 하이낙스에 의해 쥬르노 평원이 되었다. 하이낙스라면 수탉으로 하여금 오리알을 낳게 할 것이다. 새장의 문을 열 것이다.

  

   ‘세상의 모습 또한 그와 그에겐 진리가 아니었다.’

  

   세실은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그 둘이 제국의 공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얼마나 어울리는 일인가. 제국의 적. 세계의 적. 모든 새장의 적.


   “새장의 창살 사이로 너무나 뚜렷하게 보이니까.”

   “열면 다시는 닫을 수 없는데. 다시는 널 행복하게 구속하지 않는데.”
   “나를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것을 보는.”


   -폴라리스 랩소디 5권


   위 대목에서 ‘새장’은 ‘세계’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세계’는 암탉이 달걀을 낳는 ‘진리’ 위에 지탱한다. 결국 ‘새장’이란 ‘세계’이자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진리’라는 이야기인데, 이영도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런 ‘진리’를 개인의 발전을 막는 한계로 규정한다. 허나 그 한계는 달콤한 제약이고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이전 작품인 퓨처 워커를 보자.


“세상이 요구하는 공정함을 따른다는 것은 정체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같은 일에 즐거워하고 같은 일에 슬퍼하며 살며 살기는 편합니다. 누가 그런 자를 꾸짖겠습니까. 그건 완벽한 호인인 걸요. 호인의 즐거움은 정체가 주는 안락함이죠.”

  

   -퓨처 워커 4권


   새장의 문을 연다는 것, 그것은 안락한 창살 밖으로 새를 날려보낸다는 것. ‘세계’를 마주한 개인이 저 ‘진리’ 마저 무시한 채 수라도를 걷게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저주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만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예. 패스파인더에게 목적은 없지요. 다만 걸어갈 뿐.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다만 걸어갈 수 있을까요?”
“다만 살아가기는 하잖습니까?”


“별을 보는 눈을 가졌으면서도 나뭇가지 끝에도 닿지 않는 팔을 가졌다는 것은 너무 슬프지 않은가요?”

   파킨슨 신부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은 보이지 않습니까.”


   -폴라리스 랩소디 7권




   이 글은 내가 Medium에 10월에 작성한 글을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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